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헨드릭스 (문단 편집) == 여담 == * 트레이드마크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이다. 이 헤어스타일은 당시 흑인 민권운동가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독한 약품을 써가며 곱슬머리를 억지로 펴서 백인식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던 것이 아닌 흑인 고유의 곱슬머리도 멋지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헤어스타일은 곧 수많은 미국의 젊은 흑인들에게 퍼졌으며,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흑인 셀레브리티도 아프로 헤어를 함으로서 흑인 민권 운동에 힘을 보태주었다. * 당시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들이 그랬듯 그도 [[리틀 리처드]], [[척 베리]] 등 선배급 로큰롤 [[아티스트]]와 [[블루스]]의 세 거장인 3킹(앨버트 킹, B.B 킹, 프레디 킹)에게도 영향을 심하게 많이 받은 인물이나, 그의 연주 주법이나 와우 페달, 옥타비아, [[퍼즈]] 박스 등의 [[일렉트릭 기타/이펙터|이펙터]]의 적절한 사용과 놀라운 퍼포먼스는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록이란 어떻게 연주하는가'에 꼭 빠지지 않는 락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다. * 그의 연주 스타일은 펜타토닉 스케일 기반의 블루지한 솔로였으나[* 따라서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분류되며, 만들었던 음악의 형식 등으로 미루어보아(대부분이 12마디 블루스) 스스로를 블루스 음악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 록 기타리스트로 인정받는다.], 당시에 그처럼 록에 걸맞은 빠르고 스타일리쉬한 주법은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그의 스타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배울 때 기초적인 백킹(오픈 코드, 하이 코드, 파워 코드,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등)을 떼고 본격적인 멜로디 연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펜타토닉 스케일이고, 그 다음에 지미 헨드릭스를 중심으로 다른 고전 록 기타리스트들의 프레이즈들을 다룬다. 지미 헨드릭스가 록의 문법 내에서 집대성한 펜타토닉 스케일(+ 블루스 스케일) 프레이즈들은 일렉트릭 기타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블루스의 색채가 굉장히 강했던 초기 하드록 이후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이 다양한 스케일과 함께 멜로딕한 연주로 선회했다. 그럼에도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이 짙은 기타리스트들은 여전히 꾸준하게 출현했는데, 다소 거칠게 들릴 수도 있는 펜타토닉 스케일을 아름다운 톤과 함께 물 흐르듯 부드러운 연주로 승화시킨 [[에릭 존슨]], 무지막지한 파워와 스피드로 휘몰아치는 연주를 하는 [[잭 와일드]] 등이 있다. 특히 [[존 프루시안테]]는 라이브에서 퍼즈와 와우 이펙터를 입힌 상태로 펜타토닉 스케일에 기반한 즉흥 연주를 즐기는 것이 특징적인데, 딱히 블루스적 색채가 강하지 않다는 점만 빼면 누가 봐도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다만 기타 연주 실력관 별개로 보컬에는 [[핸디캡]]이 있었는지, 자신을 '백만 달러짜리 기타 실력과 5달러짜리 보컬 실력을 가진 뮤지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를 녹음할 때는 자신의 목소리가 부끄러워서 뒤돌아 서서 녹음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보통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 대부분은 지미 헨드릭스가 보컬을 맡았는데, 그의 말과는 달리 보컬도 나쁘지는 않은 축이었다.[* 물론 기타리스트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기로 정평난 [[에릭 클랩튼]]. [[데이비드 길모어]], [[존 메이어]]보다는 덜하다. 앞의 셋은 보컬도 상당히 두드러지는 축에 든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보컬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자타공인으로 '''보컬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뜬 [[밥 딜런]]'''이 있어서 묻힌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노래는 안하려고 했으나,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저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못 할 게 뭔가'라고 생각해서 보컬까지 하게 되었다고. * 헨드릭스는 [[록 음악]]과 [[R&B]]의 보컬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했다고 평가되는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으며, 보컬을 겸한 선배격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이 보컬적인 역량으로써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보컬을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나, 딜런의 노래를 듣고 보컬에 있어서 기교보다 표현력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보컬을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 시대를 앞서간 기타 연주 실력과 이펙터 사용, 그리고 락 역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 덕분에 지금도 기타리스트 중에 존경하지 않으면 이유를 물어볼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며, 기타 매거진에서 다른 록 기타리스트를 인터뷰할 때, 다소 식상한 질문인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군가요?' 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하나다. * 현대 기타리스트에 있어서 록의 첫 번째 혁명은 그가 일으켰다고 해도 좋을 만큼 [[록 음악]]의 [[대부]], 혹은 시초라 불린다. [[록 음악]] 이외에 흑인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당시에도 [[재즈]]계의 거물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헨드릭스를 위시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같은 후배 록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삘받아서 재즈 펑크를 창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불후의 명작 앨범 'Bitches Brew'에서 재즈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에게 "지미 헨드릭스 스타일로 연주해줘"라고 특별히 부탁할 정도로... * SF장르를 좋아했다.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UFO를 목격한 뒤로는 직접 책을 쓰기도 했다고. * 무종교인이었다.[[https://hollowverse.com/jimi-hendrix/|#]] 자신의 종교는 음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정치적으로는 여느 아프리카계 미국인처럼 [[좌파]]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출생해야 비로소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라는 논지로 [[낙태]]에 대해서 옹호했다.[* 바로 위의 종교관 링크에서는 지미 헨드릭스가 "낙태에 반대했다"는 논지로 지미 헨드릭스가 다소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다고 쓰여져있는데, 이는 사실 관계에서 상당히 어긋난다.] 또한 "If 6 Was 9"이라는 곡에서는 화이트칼라 보수주의자들과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가사가 실려있기도 하다. >White-collar conservatives flashing down the street >Pointing their plastic finger at me. >They're hoping soon my kind will drop and die, >But I'm gonna wave my freak flag high >---- >[[화이트칼라]] 보수주의자들이 길가에서 번쩍거리고 있어 >그들은 플라스틱 손가락을 나에게 겨누지 >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우리 종족]]이 모두 꺼지고 죽어버리기를 원해 >하지만 난 내 미친 깃발을 높이 날릴거야 * 아직도 살아있는 대부분의 전설적인 기타 연주자들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기타를 시작한 이유의 대부분이 그의 연주를 들었기 때문이라는 걸 보면 그의 영향력은 실로 무서울 정도. * 그의 영향력이 대단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실제로 5년도 안 되는 활동 기간에 이 모든 걸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정규 앨범은 고작 세 장에 라이브 앨범 한 장뿐이지만 하나하나가 다 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대우받는 걸작이며, 기타리스트라면 꼭 한 번쯤은 들어봐야 할 불후의 명곡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러한 무시무시한 기타 연주를 1970년대도 아니고 무려 1960년대 말에 해냈다. 이 때 대한민국은 아직 유신 정권도 되기 전이다. * 대표곡은 '[[Purple Haze]]', 'All Along the Watchtower'[* 원곡은 [[밥 딜런]].], 'Foxy Lady', '[[리틀 윙|Little Wing]]', 'If 6 Was 9', 'Crosstown Traffic', 'Hey Joe', 'Third Stone from the Sun', 'Voodoo Child (Slight Return)', 'Wild Thing' 등이다. * 주로 사용하던 악기는 그 유명한 '''[[Stratocaster]]'''. 가끔씩 [[Flying V]]나 [[SG(Gibson)|SG]], [[Les Paul|레스폴]]을 [[연주]]하기도 했다.[* 플라잉 브이의 경우는 사이키델릭 페인팅, SG는 아이보리 색의 트리플 [[험버커 픽업]]으로 둘 다 그 유니크함으로도 유명하다.][* 세션 활동 때는 재즈마스터도 사용했으며, 간혹 [[Les Paul]]을 연주하는 사진들도 보인다.] 앰프는 그 유명한 플렉시 [[Marshall|마샬]] [[앰프]]. 지미는 마샬 앰프의 [[게인]]을 극도로 높여 [[오버드라이브]] 사운드를 내기를 좋아했는데, 가까이서 들으면 귀가 터질 지경이었다. 너무 게인을 높여 [[앰프]]에서 연기가 날 때도 있었다.[* 초기 라이브 영상을 보면 헨드릭스가 관객들에게 기타 소리가 시끄럽다고 생각되면 귀를 막아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tZoIxlRC32k|#]]] 또 앰프에 구멍을 뚫어 잡음이 섞인 지직거리는 소리를 만드는 것 역시 좋아했다. 결국 그 비싼 앰프를 태워먹고 찢어놓는 짓이 무의미하다고 여겨, 이 소리들을 재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한 것이 오늘날 페달형 드라이브 이펙터의 조상 격 되시겠다. 이후 그의 스타일은 하드 록과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메이킹에 기본으로 자리잡게 된다. * [[Fender]] 기타는 헨드릭스라는 거장이 썼던 [[악기]]라는 이유로 위상이 한없이 높아졌다. 여기에 [[에릭 클랩튼]], [[리치 블랙모어]], [[데이비드 길모어]] 등 [[Stratocaster]]에 심취하던 내공 높은 [[기타리스트]]들이 많이 생겨나던 때여서 [[시너지 효과]]를 맛보게 되었다. * 기존 문서에 [[Fender]]에서 지미 헨드릭스 트리뷰트 스트랫을 생산한 적이 없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구글에 'Jimi Hendrix Stratocaster'라고 치면 분명히 이미지와 연주 동영상이 뜬다! 1997년에 판매되어 늦은 감이 있지만, 펜더 시그니처 모델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이므로 헨드릭스 생전에 펜더사와 어떤 논의도 할 사이 없이 요절했다는 것과 레오 펜더가 헨드릭스의 연주를 싫어했다는 것 또한 근거가 없다. 사용한 68년 스트라토캐스터가 헨드릭스의 메인 기타로 인식되고 있는 편. 헨드릭스가 쓰던 방식의 반대로 왼손잡이용 68 스트랫을 오른손잡이용으로 뒤집어놓은 트리뷰트 아닌 트리뷰트가 잠깐 발매되었던 적이 있긴 있었다. * [[멕시코]] [[Fender]]에서 정식으로 시그네쳐 모델이 출시되었다. 색상은 그가 생전에 쓰던 올림픽 화이트/블랙에 메이플 지판의 두 가지 사양이며, 바디나 컨트롤부는 편의를 위해 오른손잡이용 그대로이지만 위아래가 뒤집힌 리버스 헤드에 리어 픽업이 오른손잡이용을 뒤집어 왼손잡이용으로 만든 것처럼 경사가 기존과는 반대로 져 있어 오리지널의 사운드 특징은 잡되, 연주는 더 편하게 만들었다. * 헨드릭스가 스타덤에 오르게 된 계기는 [[1967년]]도에 개최된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Pop Festival)' 무대에 서면서부터였다. 당시 무대에서 엄청난 고출력 사운드와[* 무대에서 [[앰프]]의 [[게인]]을 한계가 넘어설 정도까지 사용하곤 했다. 연주를 마치고 나면 무대에 셋팅된 음향장비가 모두 맛이 가버리곤 해서 페스티벌 등에선 대부분 마지막 순서였다.] 핵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발적인 연주와 기타를 불태우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만 연주 후에 기타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는 언론 노출을 노린 매니저의 지시였다는 설이 있다. 실제 유명 뮤지션들의 이런 기행이나 퍼포먼스 중에는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매니저의 지시인 경우도 많다. 출연료 대신 [[마약]]을 사다주면서 기행을 부추긴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재니스 조플린]]도 이 페스티벌에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 또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의 미국 국가 연주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유명 잡지에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국가 공연에서 일개 연주곡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초반에는 정상적으로 연주한 듯한 미국 국가 멜로디가 나오는 듯 싶더니 '''기타음을 최대한 왜곡시켜서 전투기 소리 같은 전장의 소음을 연출하여''' 당시 [[베트남 전쟁]]의 늪에 빠진 미국 정부를 풍자했다.[* 덧붙여 이것은 [[지식채널e]]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FPS 게임 [[스펙 옵스: 더 라인]]의 오프닝 BGM으로도 쓰이는데, 같이 나오는 화면의 성조기는 뒤집혀진 채 너덜너덜해져있다. 항목에서 볼 수 있듯 기존 [[콜 오브 듀티]]나 [[배틀필드]]류의 FPS 게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긴 게임이다. 현대판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려보라. 정의인 줄 알았던 것이 광기의 모습을 드러내가는 게임에 걸맞는 BGM.] 이건 60년대 미국 [[히피]] 문화를 넘어 [[68 혁명]]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반체제 운동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http://youtu.be/sjzZh6-h9fM]] * 사실 그의 퍼포먼스는 혁신적이긴 하나, 기타를 박살내고 태우는 정도의 광기 어린 짓을 많이 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뭔 미친놈이 저 좋은 기타에 휘발유를 뿌려서 태우나' 할 정도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몇몇 락 매니아들은 이것도 그의 연주기법 중 하나로 분류한다. 확실히 기타가 탈 때 특유의 소리가 나긴 하지만... 흠좀무. 이 행동은 약물과도 관련이 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무대에 오르는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당시 매니저들은 흑인인 헨드릭스를 차별대우를 하거나, 출연료를 받으면 술과 마약을 사서 헨드릭스에게 주고 나머지 돈은 꿀꺽하는 막장 행보를 보였다고. 참고로 기타를 박살내는 건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가 원조이다[* 피트 타운젠드가 공연 중에 기타를 높이 들었는데 천장에 닿아 부숴지자, 일부러 그랬다는 듯이 모두 때려 부숴버린 것이 시초이다.]. 하지만 다른 퍼포먼스를 보면 기타를 단순히 연주하는 게 아닌, 쇼맨십에서도 매우 훌륭한 프론트맨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에는 '''고정 1위'''로 선정되어 있을 뿐더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에서도 '''5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현재 로큰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겸 보컬로 평가받는 록 밴드 [[퀸(밴드)|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존경한 퍼포머 중 한 명이 지미 헨드릭스였다. 같은 팀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증언에 따르면, 지미의 공연을 '''14일 연속'''으로 본 적도 있다고...] * 사생활은 굉장히 좋지 못했다. 술과 약물 중독에 중독되어 가정을 파탄 낸 부모처럼 지미도 술과 약물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특히 술과 약물에 취하면 난폭하게 변해 이로 인해 폭력을 일삼아 경찰에 수도 없이 체포 당했다. 친구 폴 루카소를 때려서 체포당하고 연인 카르멘 보레로를 눈 위를 꿰매야 할 정도로 심하게 때려 체포 당했다. 그래서 이로 인해 소속사들과의 갈등이 매우 컸으며 벌어들인 돈을 그가 저지르는 폭력 사건의 보석금과 위자료로 많이 써야 했다. * [[파일:external/31.media.tumblr.com/tumblr_m28d7zm0D01rr1prso1_500.jpg]] * 참고로 치아 연주도 바로 지미 헨드릭스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중 하나로, [[1967년]] 스톡홀름 공연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때 연주했던 곡은 'Purple Haze'.] [[록 음악]] [[기타리스트]]의 상징적인 퍼포먼스. 참고로 함부로 따라하지 않는 게 좋다. 이거 기분이 굉장히 더럽고 무엇보다 잘 안 된다(...) 게다가 라이브에서 하면 튜닝도 다시 해야 하니 그냥 쇼맨십으로 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넥스트(밴드)|N.EX.T]] 1기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이 라이브에서 간간이 보여주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9gUQ2hbXQQY|3분 11초에 '''1초 동안''' 나온다]].] 사실 치아로 줄 퉁기는 게 아니라 손가락만으로 풀링 오프를 하는 것이다. * [[롤링 스톤즈]]에서 초창기 핵심 멤버였던 '''[[브라이언 존스]]'''를 천재 뮤지션이라며 좋아했다. 그래서 같은 롤링 스톤즈의 멤버인 [[믹 재거]]를 굉장히 싫어했다. 이게 뭔 소리냐면 [[롤링 스톤즈]] 항목 참고. * 지미 헨드릭스가 생전에 재즈 록 밴드 [[시카고]]의 멤버 중 [[기타리스트]] 테리 카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 1968년에 [[로스엔젤레스]] 위스키 고고(Whisky go go)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시카고(당시엔 시카고 교통국이란 이름으로 활동함)의 연주를 감상하고 난 후 시카고의 색소폰 연주자 월터 페러자이더와 대면하여 그에게 테리 카스를 "당신 밴드의 기타주자가 나보다 나은것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 지미가 모 토크쇼에 나와서 "세상에서 가장 잘 치는 기타리스트가 된 기분이 어때요?" 라는 질문을 받자 "그건 [[로리 갤러거]]한테 가서 물어봐"라고 대답했었다는 얘기가 있다. 다만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루머이고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TV쇼에서 그런 질문을 받긴 했으나, 지미는 이에 대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선 가장 잘 치는 기타리스트겠죠."라며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 유달리 [[앨범 아트]]에 곡절이 많았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첫 번째 앨범은 영국판 커버가 마음에 안 들어 미국판은 새로 커버를 만들었고, 두 번째 앨범도 앨범 커버를 마음에 안 들어했고[* 좀 더 [[아메리칸 원주민]] 풍으로 원했다.], 세 번째 앨범은 [[폴 매카트니]]와 결혼하게 되는 [[린다 매카트니]][* 둘은 굉장히 친한사이였다. 당시엔 사진작가였고 록 뮤지션들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린다가 폴 매카트니와 친해진 것도 사진 촬영이 계기가 됐다.]가 [[센트럴 파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상에 애들 앉혀놓고 찍은 사진을 원했다가 빠꾸 먹었고, 영국판으로 나온 벌거벗은 여자들 커버는 '''싫어했다.'''[* 다른 버전인 지미 헨드릭스 본인 얼굴 사진에 대한 코멘트는 알려진 게 없다.] 어째 영국판 앨범 커버하고는 악연인 듯. * 지미 헨드릭스가 생전 쓰던 기타 중 하나는 생전에 녹음실 음향기사에게 줬다. 이게 여러 사람을 거쳐 2015년 [[Pawn Stars|한 경매 관련 프로그램]]에서 해당 기타와 판매자를 방영하여 감정 결과 완벽한 진품이 인정되었다. 해당 방송에서 판매자는 75만 달러 정도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경매로 가서 160만 달러에 팔렸다. ~~경매 프로에서는 수수료 드립 치며 45만 달러에 구입하려고 했었다~~ * 에피소드도 많고, 워낙 미친듯한 퍼포먼스로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사실 사생활에선 오히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정중하고 예의바르고 정도 많은 성격이었다. [[비비 킹]]이나 [[버디 가이]] 같이 만나서 협주도 해본 뮤지션들은 한결같이 약간 쑥쓰러워 하지만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며, 가정생활 면에서도 좀 불행한 의미로 전형적인 불안정한 흑인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유명인이 돼서도 가족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재혼한 새엄마쪽 의붓, 이복형제 자매들도 따뜻하게 챙겨줬다.[[https://www.historylink.org/File/3912?fbclid=IwAR0QyTUvFQaIw0tmeeePVOT8eA0idjfiHDbGetJh374-WpwO9-iAvtXJ410|*]] * 사실 지미 헨드릭스는 당시 흑인 커뮤니티에서 흑인이면서 백인에게 아첨하는 배신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따라서 흑인을 위한 음악을 방송하던 라디오에선 그의 음악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헨드릭스가 선배 기타리스트 [[하울링 울프]](흑인)와 함께 공연했을 때, 울프는 헨드릭스를 "백인과 짜고 돈벌이를 하고있는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헨드릭스는 울프의 발언에 가만히 견디고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살아있었을 때부터 헨드릭스을 높이 평가했던 흑인 아티스트도 존재한다. * 한 번은 영국의 명문대인 임페리얼 대학에서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재학 중이던 [[퀸(밴드)#s-2.1|스마일]]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만난 적이 있다. 브라이언이 해당 공연의 스텝 중의 한 명으로 참여했었다. 훗날 브라이언은 지미 헨드릭스를 매우 쿨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현란한 기타 솜씨를 보고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